내 최애 소설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데미안이다.
당시 앞으로 어떻게 뭐해먹고 살지 막막하고 또 그래서인지 당장의 상황이나 과거까지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던 대학교 화석 시절, 우연히 읽었었던 데미안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고,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이라는 교훈을 줬었다.
https://youtu.be/Z0aXJeC4HiE?si=bMmQJjalGguPvsCW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킵해뒀던 책이었는데 유튜브 자동재생을 통해 보게 된 이 영상이 인상적이어서 기록해두려한다. 분석심리학 관점(헤르만헤세가 칼 융의 제자에게 치료를 받던 중, 분석심리학을 꾹꾹 눌러서 담은 작품이라고 함.)에서 해석한 내용인데, 이보다 더 데미안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잘 해석해준 영상이 있을까 싶다.
우리 한국 정서(?)에 맞게 스토리를 각색하여 요약하고, 덧붙여 정말 시간과 연구를 많이 들인듯한 해석이 좋았다.
싱클레어의 꿈(무의식)이 투영된 자서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수많는 ‘나’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모르는 나도 있는데, 이러한 무의식의 ‘나‘들이 많고, 그 중에서 ’나쁜 나‘를 ‘그림자‘ 라고 한다. (’바람 피우고 싶다‘ 등 찌질하고 변태같고 난폭한 나)
어린 싱글레어를 괴롭힌 ‘일진’은 그런 그림자의 투영.
데미안 또한 daimon(악마인 동시에, 구도자, 초월자의 의미를 가짐)이 어원인, 그림자의 하나.
보통 데미안을 읽었다면 데미안을 ‘악’으로 보기 힘들텐데,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어린 싱클레어의 입장에서는 어른에게 반항 자체가 ‘악’ 이었지만 반항은 알고보면 창조의 원천이다.
반항은 세상의 발전에 있어서는 선이다.
자 그럼 무조건적인 선도 없고, 무조건 적인 악이 없다면 악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의미일까?
막상 데미안은 당시 싱클레어 입장에서는 악인 동시에, 일진들과 어울리지 말고 그들에게 대항하자고 한다.
우리에게는 분명하게 self가 있다.
고양이가 누가 가르쳐주지않아도 모래에 배변하고, 사냥감을 보면 채터링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고양이가 흔히 말하는 ‘개냥이’인 것은 아니며, 수속성 고양이도 존재하는 만큼, 케바케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비록 대체적으로 비슷한 특징은 있지만, 누군가는 독수리로 태어났고 누군가는 돌고래로 태어났다.
하지만 누가 독수리이고 돌고래인지 파악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독수리는 하늘로 가서 날고, 돌고래는 바다로 가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99명이 독수리이고 1명이 돌고래라면, 독수리가 많으니 하늘로 가세요~라고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규칙을 정하는 것이 무리를 이끌기 편하며, 개개인 또한 대부분 사회에서 악으로 판단되어 왕따가 되느니, 악을 억압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억압된 나들이 많아질수록, 억압된 나를 계속 억압하는 데에 정신적 에너지를 몽땅 사용하게되고, 그 화는 가장 미숙한 형태로 폭발된다.
‘선악을 통합해야한다’는, 악을 억압하지 말라는 것은, 악에 서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을 모조리 꺼내란 뜻이 아니다.
선악의 통합은 별의 커비 같은거다.
커비가 적을 흡수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개성은 남긴 채로 상대의 기술만 미러링한다.
악에 잠식 당하지 말고, 나의 선에 악을 통합하여 살면된다. 데미안이 보여 준 악이 폭력과 갈취가 아니라 창의와 용기였던 것처럼,
예민은 감각이 되기도하고, 분노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오만은 결심이, 충동은 결단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돈을 선이라, 그 반대가 선이라 하기도 하고 선과 악의 분류자체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선으로 두는 순간 그 반대의 나는 억압당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반대도 나임을 인정해야한다.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억압된 내가 문제를 일으킬때면, 과연 나는 스스로를 100% 사랑하고 있는지 내안의 잠재력들을 모두 꺼내고 있는지 돌아보자.
그리고 뭣보다,
https://youtu.be/Yj1SBGcquRs?si=HBv5JWn97eulRd_z
위 영상을 보고 매우 속이 시원했다!
사실 가장 읽으면서 다른데는 내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해석하도라도,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마지막이었는데, 싱클레어의 이상성욕을 표현한걸까? 싱클레어가 뒤로갈수록 조현병 같은 것이 걸린걸까? 정말 생각이 많아졌었다.
마지막은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통합이라는 위 영상을 보고나서야 완전히 이해가 갔다.
내가 남자든 여자든, 남성성과 여성성은 공존하고, 내가 남성성이 강하다고 또는 여성성이 강하다고 그것만을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
마치 mbti T가 70%라고 30%의 F를 덜어내고 사는 것은 내가 70점짜리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며, 반대로 F로 살겠다는 것은 내가 30점짜리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꿀 필요는 없지만, 내가 진취성이 강하다고 해서 배려심 있는 면을 억압할 필요는 없고, 내가 얌전한 사람이라고 성취감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결론: 별의커비가 되자.
'Etc > Entertain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심리]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2장 정리 (3) | 2024.09.16 |
---|---|
[책/심리]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1장 정리 (0) | 2024.09.16 |
[책/철학]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쇼펜하우어 아포리즘 (0) | 2024.08.29 |
[영화] 어른이 울린 인사이드 아웃2 후기 (스포 있음) (0) | 2024.07.01 |
[책/경제] 김승호 “돈의속성” 서평 (24년 6월 완독) (2) | 2024.06.30 |
댓글